
설립자 石正 장기영
(1903 - 1981)
호는 석정,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서 부친 장성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.
영월 보통학교와 춘천농업학교를 거쳐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했으며, 일본 중앙대학에서 수학하면서 강원도 출신 유학생들을 모아 금강구락부를 조직하여 민중계몽운동을 벌였다.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대학원을 수료하시고 인디애나 대학에서 국제법을 공부하시던 중, 이승만 박사와 친분을 맺게 되면서 상해 임시정부 독립단체인 구미위원회의 책임자로서 조국독립을 위해 활약하였다.
1941년 2차세계대전때는 미국첩보부대인 OSS대원으로서 태평양전쟁에서 큰공을 세우셨으며, 해방 후 이승만 박사와 <하지> 중장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하여 한국을 올바르게 인식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.
1948년 5월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어 1948년 9월 장면박사 등과 UN 한국 대표로 활약하면서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의 국제승인 및 지위를 높이는데 이바지하였다.
1949년 9월 체신부 장관에 임명, 1956년 아시아반공연맹 한국대표로 활약,그 후 폐광 위기의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시어 모든 부채를 청산하여 회사를 정상화 시키셨습니다.
1960년에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임하면서 혼란해진 국가질서와 민의를수습하였다.
그 후, 석정 장기영 선생님께서는 정계에 은퇴하신 다음, 평소의 소망이신 육영사업을 위하여 여성교육의 불모지인 고향 영월에다 아호(雅號)인 석정(石正)을 따서 석정학원을 1961년 설립하였으며, 고향의 여성교육에 헌신하시다가 1981년 5월17일 운명을 달리 하셨다.